[스토리 : 현실 파트]
엄마는 인간의 감정을 AI에 이식하고자 연구하는 연구원임. 작중 기술력이 어마어마한지 3D 프린팅으로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내는데, 이 육체는 기능적으로 정상 작동하고 심지어 기억도 심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임. 다만, 앞서 말한 ‘인간의 감정’이라는 마지막 조각이 없어서 바이오 프린팅을 통한 신인류 양산이 불가능한 상태.
주인공의 아들은 이 바이오 프린팅을 이용해 아기 때부터 만들어져, 인간의 삶을 경험시키며 감정을 생성하고자 했던 실험체임. 작중에 이런 실험체가 2명 나오는데, 바로 주인공 선임 연구원의 딸과 주인공의 아들. 당연하지만 자기 배 아파 낳은 친자식이라고는 할 수 없음.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가 모성애인데, 그래서 기른 정에 의한 모성애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음. 물론 직접 아이를 낳아서 생기는 모성애와, 아이를 길러서 생기는 모성애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
아무튼, 대홍수에 의한 인류 멸망의 시기가 다가오자, 선임 연구원은 지구를 탈출해 감정 AI를 완성하려 하고, 실험체인 딸은 그간의 실험 데이터 메모리를 추출하기 위해 분해당해야 하는 상황이 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선임 연구원은 딸을 데리고 도주하다가 대홍수에 휩쓸려 함께 사망한 것으로 보임.
결국 차선책으로 주인공이 선택되었고, 주인공은 여차저차 아들을 버리고 우주로 나가는 선택을 함. 곧 기억 데이터를 추출당할 아들에게는 "기회 봐서 도망친 다음 옥상에 있는 옷장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으면 찾아가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엄마는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데, 하필 다른 로켓이 운석에 격추당하고 그 잔해에 주인공이 탄 우주선도 휩쓸려 몸에 큰 파편이 박혀버림. 곧 죽을 위기인 주인공은 그 상황에서도 신인류 재건을 위해 감정 AI를 완성해야만 했음. 따라서 자기 기억을 추출해 아들의 데이터와 함께 시스템에 집어넣고, 반복 학습(딥러닝)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완성하고자 함. 여기까지가 현실 파트.
[스토리 : 루프(딥러닝) 파트]
이제 AI 딥러닝, 루프물 파트가 시작됨. 영화 <인셉션>에서도 “꿈속에서는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더라도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꿈에서 깬 다음에야 이상하게 느낀다”라는 맥락의 대사가 있잖음? 마찬가지로 AI 딥러닝 파트 또한 인간의 기억에 의존했기 때문인지, 비슷한 맥락에서 약간씩 이상한 점을 보임. 여기서 이상한 점이란 주로 현실 파트와 약간 다른 상황들을 의미함.
루프물이 그렇듯 주인공은 여기서 끊임없는 죽음을 반복함. 다만 이전 루프의 기억이 완벽하게 남지는 않고, 비슷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마치 데자뷔 형태로 남다가 점차 선명해지는 형태를 띠는 듯함. 이것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기억 속의 주변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남.
아들은 현실 파트 엄마의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루프가 시작되면 기회를 봐서 도망친 다음 옥상 옷장에 숨어 엄마를 기다림. 엄마는 아들이 뭔가 서운할 때 옷장에 숨는 습관만 기억하고, 문이 잠기지 않은 온 아파트를 뒤지며 옷장을 확인함. 그 과정에서 양아치들과 싸우기도 하고 총격전도 벌어지며 난리가 남.
아무튼 주인공은 루프 파트 시작 부분에서 아들이 "왜 이렇게 내 그림 확인을 안 해주냐", "자기는 왜 계속 6살이냐"라고 투정했던 것, 그리고 "아이패드에 그린 그림을 휴대폰으로 전송했다"고 한 말을 떠올림.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거기엔 아들이 현실 파트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 즉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헬기를 타고 떠나던 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음. 이걸 보고 자기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해줬던 말을 떠올린 다음 아들을 찾으러 감.
이 부분에서 수만 번의 루프 동안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그림이 사진첩에 쌓여있는데, 루프가 반복될수록 초기에는 배경이 허전했다가 최근에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등 AI가 딥러닝에 의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줌. 또한 아들은 수만 번의 루프를 살았는데도 여전히 6살임. 대충 2만 번이라 치고 54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6살이니 나이 때문에 빡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
결국 엄마는 아들을 다시 찾고 AI가 완성됨. 우주에 있는 바이오 프린팅 시설에서 완성된 신인류를 만들어내고, 이걸 다시 지구로 보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됨.
[감상 및 비평: 물리적 오류와 연출]
이 영화에서 대홍수란 모든 사건의 시작인 만큼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긴 함. 근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홍수>라는 제목은 사실 잘 안 맞는 것 같음 ㅋㅋ 제목만 좀 더 잘 지었어도 영화 평가가 이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을 것.
아니 근데, 운석이 남극에 떨어져 얼음이 한 번에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운석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알겠음. 그런데 해일이 왜 이렇게 약함? AI 딥러닝 시뮬레이션 상에서만 맞은 거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꿈같은 세계니까 약하게 설정됐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현실에서도 그걸 처맞는다는 말임?
그만한 높이의 해일이면 맞았을 때 사람이 죽어야 할 것 같은데, 맞고도 잘 살아남음.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빠른 속도로 인간을 덮치는데, 1세제곱미터의 바닷물 질량은 퉁쳐서 1톤이라니까? 높이만 따져도 수십 미터인 게 날아와서, 수십 톤은 우습게 넘길 양의 물이 시속 수십 km의 속도로 '질량 펀치'를 날리는데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음? 아파트가 안 무너지는 것도 신기할 판인데.
게다가 주인공은 그걸 유리창 앞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처맞는데 그럼 어떻게 되겠음. 해일에 의해 깨진 유리 파편이 몸을 덮칠 뿐만 아니라, 밀폐된 실내로 들어온 물이 와류를 일으키며 온 집안 물건이 소용돌이칠 텐데, 믹서기에 들어간 고기처럼 잘 다져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남극에 운석 좀 떨어진다고 수십 m 단위의 해수면 상승이 가능한가라는 의문 외에도, 이런 물리적인 의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거임.
그리고 영화가 시종일관 너무 진지하기만 함. 나도 한국식 억지 코미디 들어간 걸 선호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완급 조절이 거의 없다시피 함. 혹자는 "니들이 도파민에 미쳐서 원하는 타이밍에 도파민을 주지 못하는 작품을 비선호하게 된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파민을 주지 못한다'가 아니라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인 것 같음.
템포가 그렇게 빠른 영화는 아니지만,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게 너무 과하게 많음. 재난물로 시작했다가 루프물이 되었다가 과거 이야기도 나왔다가 액션도 했다가 AI 관련 내용도 보여줘야 하고. 차라리 진짜 정보의 대홍수라도 일으키는거면, 넘치는 정보는 아예 걍 포기하고 흘려보내면 되는데, 숟가락 살인마처럼 톡톡톡톡 계속 관객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주입하는데 진짜 딱 피곤함만 가중되는 수준임. 차라리 루프물이면 루프물답게 재난 상황 속 온갖 억까 요소에 '고인물'마냥 슥슥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도 좀 안심하고 쉬는 타임을 가질 텐데, 죽어도 다음 위기 장면부터 시작함. 시종일관 위기임. 이동진 평론가가 <7번방의 선물>인지 다른 신파 영화인지를 두고 "이건 정서적 학대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사실 이것도 비슷한 것 같음. 쉴 틈 없이 딱 받아들일 만한 정보만 계속해서 식고문 시키는 느낌.
물론 넷플릭스 작품은 시청자가 원할 때 멈추고 쉬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함. 하지만 관객보고 알아서 쉬어가라기보단, 차라리 <대홍수>를 6부작 시리즈로 만들어서 쉬는 구간을 충분히 넣고, 영화 내에서 분량 문제로 스치듯 지나가버린 요소들을 좀 더 조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음.
[감상 및 비평: 스토리와 주제 의식]
스토리가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마치 조현병에 걸린 것마냥 꼬여있는 그런 스토리까지는 아님. 위에서 작성한 것처럼, 스토리는 크게 '현실의 멸망 파트'와 '가상 공간에서의 딥러닝 파트'를 통해, 멸망하고 재건한다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긴 함. 물론 인류 재건을 위해 신인류니 뭐니 하면서 바이오 프린팅이나 AI 같은 걸 이용하는 게 불필요해 보이긴 하지만.
특히나 AI가 완성되지 않은 현실 파트에서도, 아이가 무슨 ADHD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과하게 칭얼거리고 하긴 해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충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임? 작중에서도 사실 아기를 바이오 프린팅해서 한 5년 정도 키우면 감정이 완성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애초에 개인적으로는 생물이라는 것 자체가 모체의 자궁 속에서 일종의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만들어진 '바이오 로봇'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인간의 전 신체를 다 만들어내서 살아 움직이게까지 만들어놨는데, 왜 굳이 감정을 위한 AI가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가 없음.
그러니까 AI이기 때문에 바이오 프린팅 된 아기가 성장해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저 아기도 하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성장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냐라는 거임. 성체를 프린팅해서 활동을 하게 만든다면 아기와도 같이 아무런 기억이 없을 테니 이쪽에서는 자기 기억의 주입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결국 기억이 있으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자체가 상당히 불필요하게 느껴짐.
또한 모성애/부성애라는 것에 키워드를 맞춰서 딥러닝을 시켜야 할 만큼 특별한 것인가도 의문임.
물론 모성애와 부성애는 숭고함. 하지만 그것이 숭고한 이유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그 자체로 특별한 기능이라기보다, 그들이 속해있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치가 숭고하기 때문임.
현대에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려보곤 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 것 같음. 반면에 모성애와 부성애는 친자식이든 입양이든 좀 더 쉽게 그 조건 없는 헌신과 자아의 확장, 즉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고 무엇이든 내줄 수 있는 그런 레벨에 도달하기가 조금 더 쉬울 뿐인 형태라는 의견임.
사실 앞선 의견대로라면, 진정한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성애가 그 정도의 레벨의 사랑에 도달하기가 더 쉬운 편이니, 모성애를 선택한 것은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음
이러한 의견 하에서라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그 진정한 사랑의 한 형태인 모성애를 이용하였고, 모성애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배우고 이를 AI에게 전달했다라는 흐름이 개인적으로는 더 낫다라고 느껴짐.
좀 더 큰 범주를 끌어들여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여기선 오히려 그림을 너무 작게 그렸다 정도?
또, 주인공은 작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여줄 만한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라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게 쉽게 떠오르지가 않음. 마지막에 특수 부대원들이 주인공과 아들을 잡으러 올 때, 아들을 도망치게 하고 엄마는 특수 부대원들과 싸우긴 했는데, 이것을 자기희생으로 본다면 진정한 사랑의 증거로 볼 순 있겠음. 그렇게 엄마가 특수 부대원들에게 붙잡힌 다음, 딥러닝 서버가 학습 실패라고 결론을 내렸는지 서버실이 어두워지고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보이는 묘사가 나온단 말임?
근데 그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아들에게 다가가고, 서버실에 다시 불도 들어오고, 바이오 프린팅 시설도 돌아가고 하는 건 비슷하게 'True Love'가 키가 되었던 <겨울왕국 1>에서의 안나 희생 장면을 연상시킴. 하지만 이 장면은 뭔가... 뭔가 임팩트가 부족함. 모성애의 완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만한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뭐야 뭐야?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같은 생각만 듦.
이 또한 앞서 말했던 완급 조절의 문제 같음. 가장 큰 해일이 와야 할 장면인데, 잔잔한 파도만 오는 거임.
또 그 <겨울왕국1>과 관련해서, 앞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면, <겨울왕국1>은 자매애를 true love의 범주에 집어넣고, 자기 희생의 장면도 임팩트를 잘 넣었다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이 영화는 '모성애' 정도에만 촛점을 맞추고, 임팩트조차 없음. 게다가 딥러닝, 강화학습을 통해서 모성애를 만들어보겠다라곤 하지만, 작중에서 하는 것은 빌런과 싸우기, 총격전하기, 재난 극복하기가 주류고, 그나마 모성, 범인류애 같은게 발휘가 되는 부분은 엘리베이터에 갖힌 아이 구하기, 아기를 출산한 산모 돕기 이 정도? 산모를 돕는 장면은 딥러닝 파트에서 그냥 스치듯 지나갈 뿐이고, 살리기 위해 여러번 죽어가면서 반복하는 것은 엘리베이터에 갖힌 여자아이를 구하는 장면이 유일함. 이게 전투 병기를 양산하기 강화학습인지 모성애를 습득하기 위한 강화학습인건지 알 수가 없음 ㅋㅋ
아무튼, 마무리로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상당히 가벼운 사랑만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살다간 좆이 될 것이고 인류는 다시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되찾아야만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영화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음.